원래 전혀 다른 병을 고치려고 만든 약 베스트 5

반응형




처방전 너머의 반전

약은 당연히 처방받은 대로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병을 고치려다 뜻밖의 효능을 발견하고 완전히 다른 약이 되어버린 사례들이 있습니다.


개발자의 의도를 훌쩍 뛰어넘어 더 유명해진 반전 약 베스트 5를 소개합니다.

 




5위. 아스피린 — 100년 된 진통제가 심장을 살리다

아스피린은 1899년 독일 바이엘사에서 처음 출시된 이래 100년 넘게 진통 해열제로 팔려온 약입니다.
두통, 발열, 근육통에 쓰는 가장 흔한 일반의약품이었습니다.

반전은 1970년대에 일어났습니다.

영국의 약리학자 존 베인은 아스피린이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 혈액을 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로 베인은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저용량 아스피린은 심장마비와 뇌졸중 예방약으로 완전히 새롭게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심혈관 고위험 환자 수억 명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진통제로 시작했지만, 생명을 구하는 심혈관 예방약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셈입니다.

 




4위. 미녹시딜 — 혈압약이 탈모인들의 필수품이 되다

미녹시딜은 1970년대 초 업존사에서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입니다.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는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임상시험을 진행하던 중 참가자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견됐습니다.
온몸에 털이 자라는 다모증이 나타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작용은 없애야 할 문제이지만, 연구진은 이것을 역이용하기로 했습니다.

1988년 미국 FDA는 미녹시딜을 탈모 치료제로 공식 승인했습니다.
지금은 로게인이라는 브랜드명으로 전 세계 약국에서 팔리며, 탈모인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습니다.
혈압약이 아닌 탈모약으로 훨씬 더 널리 알려진 완벽한 인생역전입니다.

 




3위. 보톡스 — 독성 물질이 뷰티 업계를 장악하다

보툴리눔 독소, 즉 보톡스는 원래 근육 질환을 치료하는 신경과 약이었습니다.
눈꺼풀 경련이나 사시처럼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하는 질환에 사용됐습니다.

반전의 주인공은 캐나다 안과 의사 진 캐루더스입니다.
1987년 사시 환자를 치료하던 중 보툴리눔 독소를 눈 주변에 주입했는데, 치료 부위 주변의 주름이 눈에 띄게 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남편인 피부과 의사 알래스테어 캐루더스와 함께 이 효과를 연구해 1992년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발견이 미용 시술 산업 전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보톡스는 2002년 FDA에서 미용 목적 주름 개선제로 승인받았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되는 비수술 미용 시술이 됐습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천만 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톡스 시장 규모는 연간 10조 원을 훌쩍 넘습니다.
자연계 최강의 독성 물질이 뷰티 업계를 장악한 가장 극적인 반전입니다.

 




2위. 피나스테리드 — 전립선약이 탈모인의 구세주가 되다

피나스테리드는 1992년 머크사에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개발한 약입니다.
남성 호르몬인 DHT를 억제해 전립선이 커지는 것을 막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임상시험 중에 놀라운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참가자들의 모발이 오히려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DHT가 탈모를 촉진하는 주범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자 모발이 회복된 것이었습니다.

머크사는 이 발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기존 전립선 치료제보다 훨씬 낮은 용량으로 재조정해, 1997년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습니다.

지금은 전립선 치료제로 쓰이는 프로스카보다 탈모약 프로페시아로 압도적으로 더 유명합니다.
같은 성분이지만 용량과 목적이 달라진 이 약은, 탈모로 고민하는 수백만 명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1위. 오젬픽 — 당뇨약이 다이어트 업계를 뒤흔들다

세마글루타이드, 브랜드명 오젬픽은 2017년 FDA 승인을 받은 제2형 당뇨병 치료 주사제입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혈당 조절을 목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임상시험 결과는 당뇨 치료 효과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참가자들이 평균 체중의 15퍼센트 이상을 감량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2022년 말부터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등 전 세계 유명인들이 오젬픽을 사용한다고 밝히면서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품절 사태가 벌어졌고, 정작 혈당 조절이 필요한 당뇨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다이어트 목적 사용자가 당뇨 환자를 훌쩍 넘어서버린 것입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라는 이름으로 비만 치료 전용 버전을 별도로 출시했지만, 여전히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뇨약이 다이어트 업계 전체를 뒤흔든 역대급 반전으로, 오젬픽의 파급력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의도를 뛰어넘는 발견들

다섯 가지 약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임상시험 도중 예상치 못한 효과를 발견한 데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연구자들이 그 부작용을 단순히 기록하고 넘어갔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탈모약도, 보톡스도, 오젬픽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상 밖의 발견을 무시하지 않고 파고든 호기심과 탐구가 의학의 역사를 바꿔놓은 셈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실험실에서, 처방전에 적힌 용도를 훌쩍 뛰어넘을 다음 반전 약이 탄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반응형